고린도전서13장
존 칼빈이 그랬던 것 같이 조나단 에드워즈도 자신의 정체성을 진정한 설교자로서 헌신하는 데서 보여주었는데, 본서가 바로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예중일 것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 진술해 놓은 사랑의 진면모를 그가 가진 모든 신적 은사와 은혜의 촉수로 더듬어내어 자기 회중들에게 연속 강론한 것을 묶어 이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의 가치를 마땅하게 나타낼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전 12장과 이후 14장에 이르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교훈이라는 반지에 박힌 보석과도 같다. 저자는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로서의 '사랑의 은혜' 사이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의 효력과 영광이 어떻게 해서 필연 참된그리스도인의 참 사랑의 은혜라는 총체적 덕행과 성화적(化) 열매를 내는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번만 읽으면 단맛이 다 빠지는 종 류의 책이 아니고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을수록 그 영적 진미를 더 느끼게 하며,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의 풍성함에 겨워 더욱 더 만족을 주기에충분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학
로이드 존스 목사는 존 칼빈(John Calvin)과 존 오웬(John Owen)을 근대이후 교회사에 있어서 히말리야와 알프스의 정봉들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야말로 에베레스트에 비유할 만하다고 극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 속에서 성경적인 참된 경건의 비밀을 천부적 지성의 섬세함으로 나타내는 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1740년대 미국 노쌤프턴교회 담임하던 그를 미국 영적대각성과 부흥의 불'을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물론 그의 경건은 일반 학문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나머지 구미의 철학계는 그를 미국이 낳은 최대의 철학자로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목사요, 전도자요, 선교사, 신학자로서의 면모들이 함축되어 나타나는것은 바로 그의 설교에서다. 그의 설교는 칼로 폐부를 찌르는듯하여 그의 설교를 듣고 침잠된 상태를 고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근본적 회심을 하였고, 어떤 이들은 그의 설교에 귀를 막고 덤벼들었습니다. 마치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귀를 막고 돌로 그를 쳐 죽였던 같이 말입니다. 1750년 그가 23년 간 섬기던 교회에서 불신임을 받아 목회직에서 물러나게 했던 희한한 일의 도화선도 따지고 보면 그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 후 8년간의 인디안 원주민 교회의 청빙을 받아 섬기다가 1758년에 프린스톤 대학 총장으로 취임합니다. 그러나 취임 3개월 만에 종두백신 실험자로 나섰다가 결국 그 병에 걸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는 1740년대부터 영국의 영적각성과 부흥의 주역이던 조지 휫필드와도 친밀한 교분을 가졌습니다.
기독교의 사랑
마음에 사랑의 은혜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통상적인 감화는 특이한 은사보다 더 우월합니다.하늘은 영원하신 성삼위의 무한한사랑의 샘에서 마신 이들의서로사랑으로 충일한 세계입니다.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다 믿음을 감동하시는 한 성령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든 사람을 향한 것이든 같은 한 성령님의 감동하심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사랑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영혼에 들어오실 때 사랑도 함께 들어옵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은 성령께서 당신의 성품 가운데서 그들과 교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인의 참 사랑을 성령의 사랑, 혹은 성령 안에서 너희의 사랑이라 부르는것입니다. 또한 사랑과 긍휼의 심정을 성령의 교제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하도록 우리를 고취시키시는 이도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향한 참사 랑이 우리 속에 계속 거하는 것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