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저 넘어에
기독교는 여러 가지 지점에서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독교는, 과학이나 경험에 근거한 사상과 달리, 단순한 신앙에 의지하고 있다는 공격에 취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들을 비판해보아야 하며, 그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초창기 서신 중 하나에서 강조하듯이 모든 것을 검증해봐야 하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도킨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무턱대고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증거에 근거하여 신뢰할 만한 태도로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을 보는 안경
기독교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에게 실재를 인식시키고 실존 차원에서 지각하게 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우주를 강력하고 설득력 있고 매력적으로 설명해줍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설명해줍니다. 기독교는 우리를 우주의 역사라는 위대한 내러티브 안에 배치하고 우리를 의미 있는 마음 지도 안에 위치시킵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사물을 다르게 보는방법을 제공하고, 삶을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공하며,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함께 나누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안정되고 안전한 무언가를 가져야합니다.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지점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광기와 파괴에 충격을 받았던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이 이를 변호한 일은 유명하다. 프롬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다음과 같은 사건을 기억하며 절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즉 아버지가 없이는 삶을 헤쳐나갈 수 없었던 한 젊은 여인이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자살한 사건을 회고했던 것입니다. 프롬은 사람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려면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지 곱씹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답을, 지향과 헌신의 틀 (framework of orientation and devotion)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것에서 찾았습니다. 이 틀은 실존에게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에 관한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프롬 자신이 전개했던 이 특별한틀은, 이 세계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며 행동하려 한다면 이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 나왔습니다. 목적이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준이 될 틀이 필요합니다. 이 틀은 우리 삶에 안전한 기초와 초점을 제공해줍니다.그리스도인에게는 이 틀과 초점이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고후 1:3) 이십니다. 하나님은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 그리고 성경의 각 페이지 속에서 당신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더러 세계의 깊이와 신비한 아름다움을 헤아려보라고 부르시는 음성인 자연계를 통해, 당신이 지으신 세계를 통해 당신 자신을 어느 정도 알려주십니다.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이런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 너머에 자리해 있는 더 위대한 실재를 놓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나는 그저 바닷가에서 놀다가 가끔씩 보통 것보다 더 보드라운 조약돌을 발견하거나 더 예쁜 조개를 발견하면 즐거워하는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진리라는 거대한 바다는 온통 미답(未踏)인채 내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도전과 응전
우리는 우주라는 바닷가를 거닐다가 우리 주위에서 조약돌과 조개를 보고 기뻐하면서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습니다. 우리는눈을 들어 저 너머에 있는 의미라는 광대한 바다, 결국 우리가 보는것들이 나온 그곳을 봐야 합니다. 이 세계에 있는 것들은 단지 표지요 저 너머에 있는 것들을 일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이 우리를, 이들이 나온 근원으로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