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에서 이해로
저자는 다소 극단적인 무신론을 받아들였고, 그 지적 미니멀리즘과 실존주의적 암울함을 기뻐했습니다.처음에 나의 상황이 신앙의 내적 논리에서 너무나 강렬한 기쁨을 맛본 터라 가끔은 나의 상황이 그저 지적 패턴과 사랑에 빠진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과학은 신앙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일관성 있고 만족스러운 이해를 찾아내고 탐구하려 합니다.더 큰 책이 있다.창조된 실제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잉크로 글자를 쓰는 대신친히 만드신 것들을 당신의 눈앞에 두셨습니다.무례함이 세련됨의 표시로 여겨집니다라고 한 플라톤의 말이 떠오릅니다.무신론의 태도는 패배나 타협이라는 식으로 판을 짜 버렸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종교 그리고 과학
삶에서 의미를 찾도록 돕는 상상의 패턴을 가리켜 신화라는 단어를 씁니다.저명한 포스트모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근대 초기의 광기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지배층이 위험한 사상을 가리켜 무효화 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생각들이 미쳤다라고 선언 하는 것입니다.신앙은 일종의 정신 질환이라는 리차드 도킨스의 거들먹거리는 발언은 멋지게 들릴지 몰라도, 이제는 편견에 사로잡힌 심술궂은 주장에 불과합니다.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생각이 종교적으로 들린다거나 창세기에 나오는 성경의 창조 기록과 유사하다고 염하여 빅뱅에 반대한 무신론 과학자들이 있었습니다.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과학의 특징입니다.종교는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를 알려줄 수 없고, 과학은 인생의 의미를 말해 줄 수 없습니다.그러나, 둘은 각각 더 큰 그림의 일부이고, 어느 하나나 둘 다를 배제하는 순간 우리의 인생관은 그만큼 빈약해집니다.버트란트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통해서 나타난 철학의 주된 가르침은 확실성 없이 사는 법입니다.터무니 없는 소리입니다!과학이 우리에게 확실성을 제공했는데 왜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한 세대가 옳은 것으로 확고하게 믿었던 내용을 다음 세대는 부적절하거나 틀린 것으로 여기고 거부할 수 있습니다.과학은 여행 중에 있고 최종 목적지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상황이 아직 유동적이라는 뜻입니다.또한 인간의 언어는 신적 실재들을 결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설계된 우주
하나님의 신비를 받아들이기 충분히 크지 않은 편협하고 파벌적인 인간의 견해를 포기함을 뜻합니다.나는 세상을 설명하는 - 경험의 실들을 엮어서 하나의 패턴이 있는 큰 그림'을 제공하는 신앙의 능력에 매력을 느꼈습니다.오직 인간만이 그들이 서있는 좁은 땅보다 더 많은 것을 비춰 주는 빛에 의지하여 길을 찾아갑니다.우리의 정신과 우주 사이의 의미심장한 일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수학은 우주의 심오한 구조와 그렇듯 긴밀하게 들어 맞습니다.인간 지성의 자유로운 탐구의 결과인 수학이 우리 주변의 물리적 세계의 구조와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우주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것이 이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교,근본주의
현상이 종교를 입증하지 않지만 종교는 현상을 설명합니다.하나님은 질서 정연한 구조를 갖춘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에 그 구조를 알아 낼 수 있습니다.우주를 검토하고 그 구조를 이루는 자세한 내용을 연구하면 할수록, 어떤 의미에서 우주는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음이 틀림 없다는 증거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세상을 제한하는 한정된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한다.우리는 시간을 생각하지만, 그 대신에 초시간성을 생각하라는 초청을 받는다.다윈의 등장은. 공적 영역에서 신을 제거할 방법으로 보았습니다.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학교에서 과학을 제거할 구실로 보았습니다.다윈이즘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예로 우생학의 등장과 스탈린이즘, 나찌즘, 먼 미래에 더 나은 문명을 맞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수많은 유토피아적 사상이 생겨나게 이르렀습니다.그리고, 환원주의적인 접근법의 등장은 복잡한 체계가 그 부분들의 합에 불과하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거대 담론
기독교의 서사는 하나님을 향한 자연적 갈망에 대해 말하고,과학적 서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자연적이라고 말합니다.진실하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전체 그림이 필요합니다.도구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집니다.우리의 시야를 향상시키고 확장해 줄 더 큰 서사, 또 다른 의미 지도가 필요합니다.과학과 신앙의 서사를 연결해서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합니다.인간은 부분적이고 잠정적이나마 더 큰 서사를 전개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게 되어 있는 존재인 듯합니다.그래서, 기독교의 이야기는 기독교의 교리보다 우선합니다.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세계관을 접하고알리스터 맥그래스를 통해 루이스의 삶과 신학을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었고,실마리 조차 잡기 어려웠던 통합적 세계관에 대해 어느 정도 궁금증들이 해소가 되었습니다.큰 그림에 대한 의미들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는 신학적 지식과 관점의 폭이 크게 넓어지고 곤고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진리의 빛으로 내 영혼에 깊이를 더 해주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