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루터와 에라스무스, 자유의지와 구원

GraceFull_book 2022. 9. 4.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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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사의 영원한 논쟁

시작부터 루터는 자유 의지가 순전히 허구이며 에라스무스는 신학적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매섭게 비판합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자신을 향해 고집스런 주장의 소유자라고 비방한 데 대해 주장을 제거한다면 기독교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확고부동한 주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표리부동은 악마와 세상과의 타협이며 결국 구원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자유의지의 범위를 이 세상에서 행해진 결정들에만 제한시키고 인간의 구원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배제시킵니다. 루터가 보기에 에라스무스의 자유 선택론은 신적인 능력들을 인간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이것은 펠라기우스적인 사상이며 신성 모독에 가깝습니다.루터는 '자유의지론'에 대항해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예 의지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그의 주장의 골자는 타락은 인간의 본성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어떠한 사랑의 계명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식으로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즉 죄가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즉 사랑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그 율법이 준수된다거나 율법이 사랑하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루터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 의지 자체도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죄의 포로가 된 자유 의지를 참으로 자유롭게 해 준 다음에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서 구절들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의 예지와 하나님의 전능성은 분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근거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이렇게 구원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과 능력을 강조했던 루터의 입장은칭의론 신학으로 체계화되었습니다. 루터가 보기에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인간의 도덕적인 능력을 높게 평가한 에라스무스의 사상과 칭의론 신학은 양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도덕적인 노력이나 공로의 균형 잡힌 결합, 이것은 정확히 신인협동설(synergism)에 불과하며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이 협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루터는 단호하게 비판합니다.

논쟁이 남긴 것은?

어차피 인간의 자유의지와 구원에 관한 주제는 논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신학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았을 것입니다. 혹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한 신앙인에 대항한 어떤 도덕주의자의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대응인가? 이러한 이해는표면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에라스무스가 비종교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루터 또한 비도덕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사람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즉 구원을 이해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을 뿐입니다. 이 두사람이 각기 다르게 이해했던 구원의 방식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과제로 던져져 있다. 이들이 남긴 숙제는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과 인간의 지와의 관계 문제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 의지의 상관관계 문제이며, 셋째는 인간 행동의 책임의 한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에라스무스와루터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두 사람의 문제의식에 집약되어 있습니다.만약 모든 일들이 신에 의해 필수적으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동기를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일하시고 우리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은 하나님 없이 오직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악마의 포로입니다. 구원이나 저주에 대해서 인간의지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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