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화와 기도, 거룩한 삶의 시작

GraceFull_book 2022. 10. 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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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찌르는 기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렬한 기도가 시작될 때, 성도들은 거룩해져 갈 것이고, 세상엔 하나님의 구원이 찾아올 것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열렬한 실천을 통해 예리하게 다듬어진 기도의 칼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찌르기 때문입니니다. 지금은 비록 죄를 짓고 있지만 사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에게 지금 속고 있는 것입니다.기도 시간에 오랫동안 엎드려 있으므로 남들은 굉장히 많이 기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실제로는 기도 가운데 죄를 죽이는 영혼의 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경우입니다.기도의 형식은 있으나 능력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대표 기도는 반드시 짧고 간결해야 합니다.그러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기도는 영적 교제에서 시간의 길이는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짧고 능력 있는 기도는 오래 지속된 보다 강력한 투쟁으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승리한 자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입니다.마음을 바치는 기도, 온 마음을 드리는 기도는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성찰하는 정직함이 필요합니다.진실해져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의 영혼 상태를 지적받는 일에 솔직하여야 합니다. 자기 안의 자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까지 내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기도의 목적과 방향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만이 기도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자의 열렬함은 모두 허위입니다.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의존의 믿음에서 우러러 나오지 않는 열렬함은 모두 이교적이고 자의적일 뿐입니다.마치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신을 부르며 몸에 상처를 내었던 것같이 말입니다.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법입니다.그리스도의 긍휼히 여기시는 성품과 인격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이 믿음을 붙잡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의 실천에 있어서 간절함입니다. 진정한 간절함은 그것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정직해지고 평판 좋은 사람이 된 것이 곧 죄와 싸워서 승리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복음적인 생각이 아닙니다.이 세상에는 내면의 죄를 죽이지 않고도 도덕주의에 의하여 길들여진 짐승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많고, 이념의 머슴이 되어서 자신의 신념에 충성하기를 하나님께 충성하기보다 더 충실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교회의 영광

행복지기를 바라기보다는 거룩한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위하여 주님을 대신해 기도하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자신의 마음이 기도를 방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그러니,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그 마음을 공격받을 수도 있습니다..은혜의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마음을 틀을 공격합니다.참된 믿음은 늘 삶 속에서 부단히 실천되며, 순종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영적 생활의 큰 문제 중 하나는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하나님 자녀 됨에 대한 확신이나 복음에 대한 담대함이 부족합니다.내적인 자유가 있으면 생활하면서 환경에 대해 불평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습니다.복음으로 말미암는 자유 때문입니다. 길고 간절한 기도는 악마에게는 불쾌한 것이고, 죄 된 육체에게는 지겨운 것입니다.우리는 기도할 때는 그 마음을 삶을 위하여 준비하고, 살아갈 때는 그 마음을 기도를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그러므로 한 사람의 사람됨은 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됨을 능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게으른 육체는 편하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기가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신자가 죄악의 게으름에 빠지려 하는 육체를 다룰 때에 노예에게 하듯이 가혹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환경과 육체의 게으름이 딱 만나게 되고, 게으름은 합리화합니다.예컨대,새벽 기도에 일어나기 힘들 때,마음속으로 충성이라고 크게 외치고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그 대적

자신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투영하는 경건의 기법입니다.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리스도께 이입시키면서 그리스도와 성례전 적으로 하나 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도는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십자가입니다. 습관 자체가 저절로 열렬한 기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기도의 습관조차도 형성하지 않는 것은 태만한 것입니다.신자는 기도할 수 있을 때에는 기도할 수 있기에 기도하여야 하며, 기도 할 수 없을 때에는 기도 할 수 없기에 더욱 힘써 기도하여야 합니다.기도 실천을 막는 두 대적이 있습니다.하나는 기도의 열렬함이 없는 것 이고, 또 하나는 열렬함으로 지속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주범은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이 두 대적에 대한 이김 없이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기도도 없기 때문입니다.식사량을 조절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으면 저절로 배가 나옵니다.노력하거나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기도 없이 방탕으로 흐르는 삶은 모두 저절로 흘러나옵니다.새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능히 죄를 이길 수 거룩한 은혜들을 부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이지, 저절로 죄를 이기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어느 날 갑자기 기도가 열렬해지기 만을 기다리며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자신이 기도와 무관한 신자가 되어가는 것을 방관하는 행동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십자가

주님의 기대는 우리로 하나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신자에게 있어서 성화 없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으며,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참된 목적과 가치를 따라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도, 누구도 대신 져 줄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그 십자가를 지고 우리는 거룩에 이르게 됩니다. 영혼의 싫증과 타협하고 육체의 게으름과 타협하면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무위도식하며 살았는지 회개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자원을 홀로 가지고 계십니다.지금도 그 문을 열어서 신령하고 기이한 은혜의 복들을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부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화에 힘쓰고, 밖으로는 그런 은혜를 받은 나를 부르신 소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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